이연(異緣)
2004.10.30 01:43

이연(異緣) - 원태연
당신 친구들이 당신의 생일 케익에 촛불을 켜 주었을때
내 친구들은 힘없이 물고 있던 내 담배에 불을 붙여 주었고
당신이 오늘 약속에 입고 나갈 옷을 고르고 있을때
나는 오늘도 없을 우연을 기대하며
당신이 좋아했던 옷을 챙겨입고 있었고
당신이 오늘 본 영화내용을 친구들과 얘기하며
그 영화에서 느낌이 좋았던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 때
나는 우리가 왜 만났고 왜 싸웠고 얼마나 행복하게 지냈는지를
빈 술잔을 채우는 친구에게 얘기하며 채운잔을 또 비우고 있었고
당신이 아무 생각없이 호출기에
메세지를 남기면 연락드리겠다고 녹음 했을때
나는 그 목소리라도 밤새도록 반복해 들으며
전할수 없는 메세지를 달래고 있었고
당신이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 놀라
어느 처마 밑으로 피해 있을때
나는 내리는 그 비를 다 맞으며
당신이 피한 그 처마 밑을 찾으러 뛰어다니고 있었고
당신이 일기장에 오늘 하루를 정리하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때
나는 보여주지 못할 편지를 끄적이며
어김없이 찾아올 내일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당신이 그해의 첫눈이 반가워 누구를 만날까 생각하고 있을때
나는 당신이 내 호출기 번호를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출이 올때마다 철렁 내려 앉는 가슴을 느끼며 첫눈을 맞이하고 있었고
당신이 책상정리를 하다 미처 버리지 못한 내 편지를 읽으며
의미 없는 미소로 아무런 느낌없이 그 편지를 휴지통에 넣을때
나는 그옛날 내가 보낸 편지의 어느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머리속으로라도 다시 고쳐쓰고 있었고
당신이 생일 며칠전 친하게 지내던 친구에게
'무슨 선물이 필요해'라고 얘기 했을때
나는 너무나 건네주고 싶었던 선물 앞에서
당신과 너무나 어울릴거라 생각하며
준비해논 돈을 만지작거리며 망설이고 있었고
당신이 새로 나온 음반의 어느 가사가
너무 좋더라며 음미하고 있을때
나는 나하고 절대 상관없는 슬픔인지 알면서도
무너지는 그가사에
또 한번 가슴이 내려앉아 함께 무너지고 있었고
....
당신이 한 남자를 얻었을때
나는 영원히 한 여자를 잃었습니다.
태그
가을 유서
2004.11.04 22:28

가을 유서.
-류시화.
가을에는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꺼풀 위에
혼이 빠져 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쌀쌀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새 하얗게 돌아서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종된 채 아직 땅 속에 묻혀 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는 바닷게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별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껍질 위에
살아 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큰곰별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내어 읽으리라
태그
최희진: 퍼가요~♡ 2006.11.03 11:34
오래된 수첩을 정리하다 보면
2004.12.20 23:48

오래된 수첩을 정리하다 보면
-유미성
한때 내게는 정말로 소중했던 이름들이 연락처가 버려지고는 합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통화 했던 친구들...
하루의 반 이상을 얼굴 맞대며 지냈던 급우들과 직장 동료들...
시간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 소중한 사람들의 존재를 기억들을
내 마음속에서 조금씩 사라지게 만들어 버립니다
늘 내 수첩의 맨 위에 적혀 있는 그 사람
어제는 낡은 수첩을 정리하다가 그 사람의 이름을 지울뻔 했습니다
우리집 전화 번호 보다도 먼저 기억나는 전화번호이기에
굳이 수첩 맨위에서 그 이름과 연락처를 지워 버린다고 하여도
크게 불편한 일은 없었겠지만...
그렇습니다
이제 그 연락처조차도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그 번호를 눌러도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수 없겠지만
난 끝내 그 사람의 이름을 지우지 못하고
새로 장만한 수첩의 맨 위에 그 사람의 이름과 연락처를
옮겨 놓았답니다
이제 아주 먼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 내 사랑...
아주 오래전 그 사람의 머리속에서 수첩에서 지워져 버렸을 내 이름
하지만 나마저도 그 사랑을 놓아 버린다면
이제 우리사랑은 세상에 아무일도 아닌일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아서...
오래된 수첩을 정리하다 보면 지워지는 이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내 수첩속에 빼곡하게 적혀 있는 이름들은 영원히 내 수첩안에서
내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태그
이런 사람이 좋다
2005.01.27 22:32

이런 사람이 좋다
그리우면 그립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옷차림이 아니더라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고
자기 부모형제를 끔찍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를 누릴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노래를 썩 잘하지 못해도 즐겁게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린 아이와 노인들에게 좋은 말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책을 가까이하여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좋고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잘 먹는 사람이 좋고
철따라 자연을 벗삼아 여행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손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좋다.
하루 일을 시작하기 앞서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 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때에 맞는 적절한 말 한마디로 마음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외모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새벽 공기를 좋아해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 좋고
남을 칭찬하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고
춥다고 솔직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
태그
방옥미: 이런 사람 좋죠.......^^ 2005.08.30 19:53
방옥미: 퍼간다 ^&^ 2005.08.30 19:54
이진재: 퍼가요~♡ 2006.01.16 02:00
최희진: 퍼가요~♡ 2006.11.03 11:32
방옥미: 퍼간다 ^&^ 2005.08.30 19:54
이진재: 퍼가요~♡ 2006.01.16 02:00
최희진: 퍼가요~♡ 2006.11.03 11:32